❍ 한길문고 (since 1987 - 군산 녹두서점부터)
1987년 녹두서점을 시작으로 2002년 한길문고로 서점명을 변경하였다. 2012년 군산에 444ml라는 폭우가 내렸고 지하에 있던 한길문고는 10만권의 책을 모두 잃었다. 10만권이라는 책의 값어치는 말로 이루할 수 없지만 그에 더불어 폭우가 휩쓸고 간 서점 내부는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 분간하기 힘들정도로 구분하기 힘들었다. 당시 서점 내부에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공간과 책의 값어치는 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상황은 故이민우 사장님에게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사람이서 만들 수 없는 기적을 군산 시민들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직장인 아닌 서점으로 출근을 하여 이미 값어치가 사라진 책들은 한곳에 정리하고 빛을 잃은 서점 공간을 쓸고 닦아주신 것이다. 그렇게 한길문고는 피해 한 달만에 다시 오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한길문고는 당시 운영하던 지하에서 하고 있지 않고 2층에서 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가끔은 있다. 지하에서 얻은 트라우마는 현재 한길문고를 운영하고 계신 문지영 대표님께는 크게 다가갔다. “만약 다른 곳에서 한길문고를 운영해도 지하에서는 하고 싶진 않아요.” 대표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시다.
또 한 가지 해결 할 수 없는게 더 있다. 이민우 사장님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사장님은 어느 누구하고도 대체 불가이다. 하지만 그런 사장님께서 한길문고에 남기고 가신 것이 있다. 그것은 기적같이 한길문고를 다시 열게 도와주신 군산시민들에게 받은 ‘빚’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서점에서 돌려드릴 방법은 문화행사 또는 공간을 통해서라고 당시부터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한길문고는 매월 문화행사를 진행하였고, 군산시민들께서도 계속 방문중에 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과 다양한 편리한 도서구입 방법으로 인해 지역서점(한길문고 포함)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작년 코로나 상황 때문에 행사를 많이 진행하지 못하였지만, 2019년 한길문고의 행사는 호황 그 자체였다. 정재승 박사, 정유정 작가, 나태주 시인 등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유명한 작가님들을 많이 섭외하였고, 많을 때는 150명의 고객을 모시고 강연을 진행했다.
그러했기에 코로나 상황을 버티고 지나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군산 시민들에게 받은 ‘빚’을 다 돌려드리지 못했다. 평생 다 돌려드릴 수 없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한길문고는 오늘도 한걸음 나아간다.
❍ 군산
군산은 일제강점기 때 전라도의 모든 쌀을 수탈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수도권지역이 아님에도 군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살았었다. 그리고 그들 편하게 군산을 발전 시켰다. 일제강점기를 거슬러 올라가 군산에서 진포대첩 그리고 이순신 장군께서 전투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선유도에 들렸다 간 지역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전라북도의 쌀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정미소가 있었던 지역으로 일본인들이 발전 시켰다는 말은 진실은 아니다.
군산에는 일본인들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당시 만들었던 일본식 건물, 세관, 절 등이 있는데, 군산에 있는 일본식 동국사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면 일본에 있다고 속을 정도로 일본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과거 경마장도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철수하던 중 경마장에 묻어 놓은 폭약을 미군이 잘못 만져 폭파하는 사건으로 경마장은 산산조각나 사라졌다. 당시 지진이 일어났다고 착각 할 정도로 큰 폭파였다고 한다.
처음 군산은 이런 일본의 잔재를 모두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아픔을 외면하고 그대로 묻으려고 하였다. 볼 때마다 너무 아프기 때문에.. 하지만 현재 이런 잔재를 보며 우리는 되씹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마음을 다스린다.
현재 군산은 시간여행축제를 진행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역사회와 협업하여 축제 기간 길거리 상점이 열려 많은 볼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아픔을 보고 기억하여 더 강하게 일어나는 군산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